알고보면 보험은 재미있는 양면성을 가진 산업이다. 고객의 나이, 병력, 사고 이력, 계약 내역 등 수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이 정보들을 분석해 보험 상품이 설계되는 데이터기반의 산업이면서도 동시에 사람 중심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약관을 이해시키고, 사고 상황에 공감하며, 신속하고 신뢰성 있게 보험금 지급을 처리하는 데 있어 인간적 연결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보험사들은 인공지능(AI)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 째, 바로 비용절감이다. 보험업무 중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AI를 통해 자동화함으로써 운영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 째, AI가 가진 정확성이다. 머신러닝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맞춤형 보험 설계 및 위험 평가를 더 정밀하게 수행할 수 있다.
세번 째, 실시간으로 가능한 감시 기능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지능화되고 있는 보험사기범죄에 대해 탐지하거나 이상 거래 감시를 AI가 실시간으로 지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성형 AI 기술을 통해 약관 설명, 고객 문의 대응, 청구 안내 등 고객 응대 품질까지 한단계 높일 수 있다.
2024년 이후 국내 보험사들은 이러한 목적 아래 AI 기술을 다양한 업무영역에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보험사에서는 이런 AI기능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AI 기반의 장기보험 심사 시스템을 통해 피보험자의 병력과 청구 이력을 자동 분석하는 체계를 도입한 보험사가 있다.
이 보험사는 머신러닝 모델을 통해 고객의 위험도를 평가하고 적절한 보장 범위를 제안하는 등, 실제로 높은 심사 승인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수 판단의 일관성과 정확도를 높이고, 심사자의 판단 부담도 줄이고 있다.
또 다른 보험사는 진료비 영수증을 OCR(광학문자인식) 기술로 자동 인식하여 보험금 청구 프로세스를 단축시키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서류를 사람이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인식된 정보를 기반으로 자동 심사가 이루어지며, 이로 인해 해당보험사의 보험금 지급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보험 가입 심사를 의미하는 언더라이팅(Underwriting)은 보험사가 가입자의 위험 수준을 평가하여 보험 인수 여부와 보험료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일부 보험사는 그동안 수작업을 통해 진행되었던 언더라이팅 대신 AI 기반 언더라이팅 시스템을 도입하여, 고객이 제출하는 최소 정보만으로 과거 병력을 판단하고, 복잡한 심사 없이 자동으로 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AI 기반 언더라이팅 시스템으로 전체 계약의 상당 부분이 빠르게 체결되고 있으며, 수작업 대비 오류율이 낮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고객의 불만이나 문의를 분석하는 VOC(Value of Customer) 시스템에도 최신 AI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음성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기술인 STT(Speech-to-Text)를 통해 고객이 콜센터에서 남긴 음성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하여 LLM(Large Language Model)이라는 GPT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을 통해, 대화 내용을 요약하거나 의도를 분석하고 있는 것.
이러한 AI 기술이 결합된 시스템을 통해 보험사는 고객의 불편사항을 실시간으로 분류하고, 담당 부서에 자동 전달함으로써 대응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VOC 시스템의 AI 기술을 접목시킨 것을 뛰어 넘어 일부 보험사는 AI 시스템을 통해 갱신 고객의 이탈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상담 이력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는 시스템까지 도입하는 중이다.
현재 많은 업계에서 이미 다양하게 활용 중인 생성형 AI를 통해 보험사는 상담 기록 요약, 고객 니즈 분석, 상품 설명 작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무를 지원하는 데 활용 중으로, AI Agent로 불리는 상담 전용 알고리즘도 활발히 테스트되고 있다.
한 생명보험사는 AI OCR 기술을 활용하여 보험금 청구 문서를 자동 분류하고, 최대 47종의 문서를 고속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I OCR은 보험금 지급까지 걸리는 시간을 업계 평균 대비 약 3배 빠른 수준으로 단축시켰다.
이와 함께 음성봇을 통해 매월 수만 건의 고객 전화에 응답하고 있으며, 내부에서는 ‘AI 활동비서’라는 이름의 문서 작성 및 행정 업무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AI가 보험 산업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고객 역시 몇 가지 중요한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기계가 하는 일에 무슨 실수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세 설명했듯 보험은 데이터뿐만 아니라 사람 중심적 사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AI 활용을 통해 상담 속도는 빨라졌지만 정보 전달의 깊이와 맥락성은 부족할 수 있다.
챗봇이나 음성봇의 설명은 인간 상담자보다 친절하거나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복잡한 약관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소비자의 판단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
뿐만 아니라 AI가 결정한 보험 인수 거절이나 보험료 산정 기준이 불투명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AI 언더라이팅은 내부 알고리즘에 기반해 판단되기 때문. 하지만 내부 알고리즘이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를 마주했을 때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식하고 행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AI는 점점 더 개인의 생활 습관, 건강 상태, 소비 패턴 등을 보험료에 반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곧 보험료가 단순히 나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행태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객은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분석되고 반영되는지, 그 기준이 공정한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AI는 보험업의 속도와 효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지만, 그 기반 위에 놓여야 할 것은 여전히 ‘신뢰’와 ‘보장’이라는 보험의 본질이다.
기술은 자동화를 가능하게 하고, 분석을 정교하게 만들지만, 고객은 스스로 신중하게 묻고, 꼼꼼히 확인하며, 설명을 요구하는 능동적 존재여야 한다.
기술 기반 인간 중심 보험,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험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