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 원인은 현재 민간보험료가 오르는 이유와 매우 닮아 있는데, 국민건강보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역시 과잉진료와 의료 쇼핑으로 인한 의료 남용에 있다.
필요한 외래 진료는 물론, 고비용의 MRI와 같은 의료 서비스가 재정 악화를 불러오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뿐만아니라 인구의 고령화가 가져오는 질병구조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꼽히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피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만성질환,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이용 횟수가 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재정악화의 이유다.
이 모든 것과 연관 지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하나. 복지의 영역으로 진행되는 국민건강보험인 만큼 보험료에 비해 국민들에게 주어지는 높은 서비스 혜택과 정책 역시 이 같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악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권정현 연구원의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 의하면 KDI에서 지적하는 가장 큰 재정 악화의 원인은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한 노인 인구의 증가가 아닌 의원급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이다.
우리가 의원급 의료기관을 방문하게 되면 ‘실비보험 가입하셨죠?’라는 질문과 함께 고가의 치료를 권유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비슷한 맥락의 느낌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이렇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불필요하거나 고가의 진료를 권하는 구조는 건강보험 지출 증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행위별 수가제 등 의료 공급자의 진료 횟수·양 증가가 보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과잉진료를 유도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물론 고령화 역시 중요한 재정 악화 요인으로 국내 65세 이상의 노인 진료비가 전체 44.1%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 진료비 속에도 과잉진료의 영향이 남아있을 확률이 높고 KDI의 최근 10년간의 추적 결과 과잉진료와 가격 상승 요인이 이 같은 상황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고령화 문제도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우려를 사고 있다.
과잉진료 이야기를 꺼내보면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인 ‘의료수가제’. 의료 수가제란 의료기관이 환자와 건강보험공단 등으로부터 진료, 검사, 수술 등 각종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받는 비용, 즉 '의료 서비스별 가격'을 정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 급여에 해당하는 진료 항목만을 대상으로 국가가 의료 수가를 정하며, 비급여 항목(미용 등)은 의료 수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의료수가제가 진료 횟수, 절차가 많으면 많을수록 의료기관의 수입 역시 증가한다는 것. 이 구조를 악용하는 몇몇 병의원에서 치료 시 불필요한 검사나 시술, 진료를 유도하는 경우 많다.
이러한 과잉진료로 인해 국민건강보험은 물론 민간보험사의 실비보험 등에도 영향을 주어 보험료가 높아지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그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과잉진료는 환자에게도 이후 보험료 지급을 거절 하는 등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 과잉진료로 인한 문제의 원인은 의료수가제에 있다. 당연히 문제를 해결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의료수가제의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의 관리를 강화하고 의료 남용이나 의료 쇼핑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수가제를 대신해 가치기반수가제(VBC, Value-Based Care)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치기반수과제는 단순히 진료 횟수, 서비스 제공량에 비례해 수입을 내는 것이 아닌 의료의 질, 환자의 건강, 사용된 자원의 균형을 평가해 수입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진행할 경우 의료 질의 향상은 물론 비용 효율성 증대 등의 추가 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령화, 저출산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동반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는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료수가제와 같은 제도의 개편은 다르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바꿀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문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도입하기 위한 보상체계를 개편 중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상태가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온 지는 이미 한참, 아직도 여러 난관들이 남아있지만, 모두의 안녕과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 복지를 위해 더 이상 재정 악화를 지켜만 봐선 안될 것이다.